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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秉策

朱秉策

1900. 3. 14 ~ 1947.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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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朱秉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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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울진(蔚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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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영덕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900년 3월 14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 후정리(後亭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면 금호동(錦湖洞)으로 이주하였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주병책(朱柄策)을 썼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잡화상을 하고 있었으며, 3월 18일 영덕군 영덕면 남석동(南石洞)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덕군의 만세운동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계획되었다.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예수교 장로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기독교 신도들을 규합하며 영덕군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김세영은 영덕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할 인물로 금호동(錦湖洞) 예수교 북장로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을 생각하였다. 김세영은 같은 교회 조사 김혁동(金爀東)을 강우근에게 보내어 만세운동을 제의하였다. 이때 강우근은 이미 신문을 통하여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을 알았고, 사람들로부터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한 때에 김혁동으로부터 김세영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강우근은 흔쾌히 동의하였고, 3월 18일 영덕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강우근은 김암우(金岩佑)·이정규(李正奎)·강대열(姜大烈) 등 교회 신도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8일 잡화상을 하고 있었기에 영덕면 장터로 향하였고, 강우근 등 주도자와 50여 명의 교회 신도들도 비밀리에 장터로 모였다. 오후 2시 30분경 장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에 주도자들은 장터 한가운데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장사를 하던 중 시장 중앙에서 울리는 만세소리를 듣고, 만세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망설임 없이 시위에 동참하였다.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장터 곳곳을 누비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리를 들은 일제 경찰은 긴급히 출동하였고, 무력을 써서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강우근 등 20여 명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혀 조사를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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