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明宇
朱明宇1881. 2. 24 ~ 1952. 8.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덕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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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1년 2월 2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강구면(江口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황장동(黃腸洞)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인근 교회의 집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내는 윤악이(尹岳伊)로 1919년 3월 24일 원전동(院前洞) 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한 바 있다. 3월 19일 영덕군 지품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한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매일신보』 기사에서 접하고, 본격적으로 거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3월 19일은 지품면 원전동 시장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주민이 참여하도록 이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당일 아침 ‘대한독립만만세’라고 적은 종이 깃발을 가지고 원전동 시장을 향해 나아갔다. 이동하는 도중에 김중명(金重命)을 만나 함께 만세운동을 벌이자고 뜻을 모았다. 정오 무렵 시장에 도착하였고, 직접 군중들 앞에서 “조선의 독립을 이룩할 때까지 죽기를 결심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이에 군중들 가운데 정순용(鄭順用)·김주일(金周日)·박기동(朴基東) 등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시위에 가담하였다. 특히 김주일의 경우에는 죽기를 결심하고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니 만세를 외쳐야 한다고 연설하기도 하였다. 이에 김석이(金錫伊) 등이 추가로 참여하여 시위대의 수는 10여 명으로 늘어났다. 김석이 등은 종이 깃발을 흔들며 만세운동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곧 출동한 일제 경찰에 시위대 6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으나, 즉시 항소하였다. 그 취지는 “대한의 민족으로서 그저 독립을 축하는 자를 2년에 처하게 함은 부당하고, 비록 몸은 강탈당하였으나 마음은 진실로 불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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