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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斗七

朱斗七

1870. 2.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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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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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풍산(豊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풍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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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풍산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70년 2월 14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이인면(里仁面) 광하리(廣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3월 14일 풍산군 풍산읍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풍산군에서는 천도교 중앙총부의 계획에 따라 풍산읍 천도교구도 교구장 주병남(朱炳南)이 주도해서 3월 14일 풍산읍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풍산읍 천도교인 장세급(張世岌)·박인진(朴寅鎭)·주의락(朱義洛) 등이 풍산읍 천도교구에서 주도하는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여 태극기 등을 제작하면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0일 풍산군 내 천도교인이었던 맹시정(孟時楨)은 원포리(院浦里)에 위치한 김병식(金炳軾)의 집에서 강희준(姜熙俊)을 만났다. 강희준은 맹시정과 김병식에게 3월 1일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이 주도해서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맹시정은 3월 12일 하지경리에 위치한 천도교 전도교실에서 이계술(李啓述)을 만나 3월 14일 풍산읍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참여를 결심하였다. 3월 14일 주병남을 비롯한 천도교 인사들이 풍산읍 천도교구실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에 합류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 소식을 접한 일제 군경이 천도교구실로 난입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했으나, 시위대는 일제 군경의 저지를 뚫고 풍산읍 일대를 누비기 시작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견소 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총칼과 몽둥이를 앞세운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려고 하자, 격분하여 헌병분견소로 진입해서 기물을 파괴하고 헌병의 무기를 탈취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으며, 그 결과 시위에 참여한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시위대는 오후 4시경 해산하였다. 일제 헌병의 발포 소식이 전해지자, 3월 20일 안수면(安水面)의 한주호(韓周鎬)·김동규(金東奎) 등이 1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평산리(平山里) 헌병주재소로 가서 3월 14일 풍산읍 시위에서 일제 헌병의 발포 및 무력진압을 규탄하였다. 그 후 평산리에서 소산동(小山洞)으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4일 만세시위 후 붙잡혀 1919년 7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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