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虎振
趙虎振미상 ~ 1919. 3.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군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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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하림리(下林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알 수 없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조호진(趙鎬振)을 썼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군북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한 지역 인사들이 독립선언서를 몰래 지참하고 내려와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군북면의 인사들은 1919년 3월 5일 사촌리(舍村里) 조용대(趙鏞大)의 사랑채에 모여 3월 20일 군북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구체적인 계획은 3월 10일경부터 백이산(伯夷山)의 서산서당과 원효암 의상대 등에서 논의되었다. 서산서당에 모일 때는 한문 강학으로, 의상대의 모임에는 나무꾼으로 가장하여 일제 경찰과 밀정을 피하였다. 그리고 각 지역별 연락과 군중 동원, 시위에 필요한 수천 장의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 등의 일에 관한 역할을 분담하였다. 독립선언서는 내용을 축약하여 간단한 전단 형태로 만들었다. 3월 20일 정오에 시작하기로 한 만세시위는 계획을 앞당겨 오전 9시 신창학교에서 시작하였다. 전날 함안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으로 인해 일제 군경의 감시가 강화된 것에 따른 조치였다. 오전 시위는 일제 군경의 진압으로 해산되었다. 시위 주도자들은 군북 장터로 이동하여 정오에 다시 만세시위를 시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이 예상보다 많이 몰려들어 군북 장터의 장소가 협소해지자, 인근 냇가로 이동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2차 만세운동을 개시하였다. 시위가 전개되면서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 합세하여 군중은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위협을 느낀 일제 군경의 발포로 시위대 가운데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현장에서 일제 군경의 발포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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