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顯珪
趙顯珪1877. 12. 30 ~ 1950. 6.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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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77년 12월 30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소남리(召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현육(趙顯陸)이다. 영남 유림의 태두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곽종석과 김복한(金福漢)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유림탄원서, 이른바 파리장서를 작성해 제출하기로 결의하였다. 김창숙(金昌淑)은 2,674자에 이르는 장문의 글을 작성하였으며,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유생 137명이 장문의 글에 연서하였다. 이때 유림의 일원으로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김창숙은 유림의 탄원서를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였으며, 임시정부는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로 파견 간 김규식(金奎植)에게 유생들이 연명한 탄원서를 전달하였다. 한편 임시정부는 유림의 탄원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으며, 동시에 탄원서를 3,000부 인쇄해서 파리강화회의를 비롯해서 중국 및 조선에 배포하였다. 파리장서에 서명한 인물로 4월 2일 경상북도 상주(尙州)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송회근(宋晦根)이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일제 군경은 송회근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창숙을 중심으로 한 유생들이 독립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작성해서 임시정부를 통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파리장서의 존재를 확인한 일제 군경은 서명에 참여한 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성대식(成大湜)을 연행하였다. 4월 18일 일제 군경은 파리장서를 주도한 곽종석을 붙잡았으며, 그 이후로도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생 20명을 연행하였다. 일제 군경에 연행된 유생들은 일제 군경의 심문에도 불구하고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명 전원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1919년 6월 일제 군경은 임시정부에서 전국 각 지역의 향교로 우편 발송한 파리장서 한문본을 입수하였다. 일제 군경은 한문본을 근거로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생들을 다시 차례로 연행하였다. 이때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는 명목으로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그해 8월부터 대구지방법원에서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생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약 3개월 동안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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