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漢元
趙漢元1893. 1. 15 ~ 1969. 8.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3년 1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일어난 가산리(佳山里)의 연극공연장 만세시위 및 4월 2일 홍성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閔泳甲)은 같은 동리의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금마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함께 추진할 동지들을 규합해 나갔다. 민영갑·이재만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제안받고, 적극 찬성하여 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學)·최중삼(崔仲三) 등과 함께 곧바로 동지로 결합하였다. 4월 1일 가산리 소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연극 관람을 위해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동지들과 논의하여 이를 기회로 주민들에게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연극공연일인 4월 1일 민영갑·이재만 등과 함께 관객으로 임시 연극공연장에 입장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탐색하며 연극을 관람하였다. 한창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동지들과 함께 객석에서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관객들을 향해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곧바로 관중 수십 명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위 발생의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2일 동지들 및 전날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홍성장터로 가서 또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선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장날을 맞아 장터에 나온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만세시위의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이 대거 동참하면서 전날의 만세시위보다 더욱 큰 규모로 발전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혐의로 민영갑·이재만·김재홍·조재학·최중삼 등과 함께 붙잡혔다. 홍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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