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趙漢國

趙漢國

1896. 5. 14 ~ 1962. 3.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漢國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5월 14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함안면 봉성동(鳳城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시장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함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50두락 정도의 토지를 소유하고, 양말제조업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에 속하였다. 친형인 조한휘(趙漢輝)는 고종의 장례식에 직접 다녀오면서, 서울의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독립선언서를 들고 돌아와 함안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계획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조한휘·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 등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인물들과 안지호(安知鎬) 등 지역 민족주의 인사들이 모여서 함안 읍내 만세시위 거사를 논의하였다. 조한휘 등은 1919년 3월 19일 읍내 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동지 규합과 군중 동원,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 전단 제작 및 등사 등 역할을 분담하였다. 이때 수천 장의 태극기를 제작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거사 당일 읍내 중심지인 봉성동 태평루(太平樓)에 태극기를 걸고, 동명학교 교사 이희석(李喜錫)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수백 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선두에 서서 친형 조한휘와 함께 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가 전개되면서 장터에 나온 군중이 합세하여 시위대가 3천여 명까지 불어났다. 군중을 선도하여 함안경찰관 주재소 등에 돌과 기와 조각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주재소에 들어가서 기물과 서류를 파손하며 일제 경찰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였다. 이때 강상중(姜相中)과 함께 마산의 일본군 수비대와 연락되는 전화선을 끊어서 출동을 늦추기도 하였다. 또 폐쇄해 놓은 함안군청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며 구타하였다. 기세 높았던 시위대는 저녁 무렵 출동한 마산 중포병대대 일본군 병력이 도착하여 경찰과 합세하여 진압에 나서면서 해산하였다. 일제 군경은 총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붙잡혔다. 고문을 동반한 취조 과정을 거쳐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