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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泰憲

趙泰憲

1897. 3. 14 ~ 198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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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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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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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영덕군 영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3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병곡면(甁谷面) 송평리(松坪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덕의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준비한 사람은 북장로교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었다. 김세영은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가던 중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접하고 귀향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8일 영해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수천 명이 참여하였다. 정규하(丁奎河) 등이 정오에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만세를 적은 종이를 안고 시장으로 진입하였고, 오후 1시경에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시작하였다. 2,000~3,000명의 군중은 열렬하게 호응하였다. 시위대는 경찰관주재소, 영해공립보통학교, 면사무소, 우편소, 영해심상소학교를 돌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 부근에서 시위를 하였고, 주재소와 면사무소에서 시위를 하면서 시설을 파괴하였다. 주요 시설들은 지붕과 기둥만 남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이에 영덕경찰서장과 경찰들이 파견되었으나 곧 도망쳤고, 40~50여명의 시위대가 추적 끝에 붙잡아 구타하고 감금하였다. 이후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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