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天凞
趙天凞187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산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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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산외면(山外面) 오봉리(梧鳳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3세이므로 1877년 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8일 금천군 산외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금천군에서는 1919년 4월 초순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금천군의 만세시위 중 4월 8일 산외면 신명리(新明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7일 산외면 영청리(永淸里)에 거주하는 최인식(崔仁植)으로부터 다음날 만세시위 계획이 담긴 밀서 5통을 전달받았다. 이에 최인식 집으로 가서 태극기 5매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4월 8일 오후 2시 무렵 최인식·심문식(沈文植)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최초 시위대는 개신교인이 중심이 되었으며, 장날에 모인 주민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6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일제 군경은 만세시위를 외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시위를 주도한 인사 6명을 붙잡았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산외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조포주재소를 거쳐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본인은 구장으로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헌병의 조사 과정에서 구타를 당하였음을 주장하면서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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