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且尙
趙且尙1898. 7. 10 ~ 1995. 7.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청도군 대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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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7월 10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유호리(楡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22세로 청도군 대성면 유천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청도군 대성면의 만세운동은 대성면 내호동(內湖洞)에 있는 기독교 교회 장로파의 조사(助事)인 김보곤(金寶坤)이 만세시위를 권유하면서 시작되었다. 김보곤은 평양으로 가던 중 평양신학교 생도인 이승길(李承吉)로부터 평양에서 길모(吉某) 목사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서울 등 각지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청도로 돌아와 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3일 김보곤에게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들었으며, 3월 14일 청도군 유천시장 장날에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받았다. 당일 밤에 태극기도 함께 나누어 받았다. 이에 따라 대성면 내호동에서 김타관(金他寬)·정술문(鄭述文)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동시에 김타관·정술문에게 3월 14일 유천시장 만세시위에 밀양공립보통학교 생도들도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통지서를 발송하도록 하였다. 3월 14일 만세시위 위해 유천시장으로 향했으나 일제 경찰의 엄중한 단속과 운집 인원의 부족으로 결국 계획대로 만세시위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후 3월 14일 유천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려 한 사실이 일제 경찰에 누설되어 시위 주동 혐의로 김보곤·김타관·서정기·정술문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고문으로 인해 왼쪽 눈이 실명되었다. 풀려난 이후 김진학(金鎭學) 등과 함께 군자금 700원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활동을 펼쳤다. 또한 일제의 식민정책에 반대하는 동진회(東進會)에 참여하면서 일제 상품 불매운동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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