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宗鉉
趙宗鉉1875. 8. 2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함경남도 갑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75년 8월 20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회인면(會麟面) 화장리(化墻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갑산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갑산군 만세시위는 함경남도의 천도교인들이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3월 3일 합경남도 단천의 천도교 지도부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천도교 지도부는 만세운동을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진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세시위를 갑산 일대로 확산시키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서봉화(徐鳳化)는 단천, 그리고 최봉천(崔鳳天)은 갑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8일 갑산에 도착한 최봉천은 이인면(里仁面) 가재리(加財里)의 천도교 분교실에 가서 김길렬(金吉烈)에게 3월 15일 갑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도록 권유하였다. 3월 9일 최봉천은 장평면(長平面) 서부리(西部里) 천도교당, 그리고 그 날 밤에는 화장리(化墻里)의 정완조(鄭完朝)를 방문하여 3월 15일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갑산군 내 천도교 인사들은 외지 인사가 주도하는 3월 15일 만세시위의 참여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 갑산군 천도교 전도사 김명수(金明洙)는 풍산군(豐山君) 안산면(安山面) 하지경리(下地境里)의 천도교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서신에는 갑산군 천도교인들도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합세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도록 권유하는 내용과 전 민족이 궐기해야 한다는 격문이 담겨 있었다. 이에 김명수는 갑산군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2일 김명수는 회인면 후지리(厚地里)에 사는 정국태(鄭國泰)를 방문하였다. 정국태의 집에서 정국태·정수웅(鄭秀雄)과 함께 3월 15일 갑산군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5일 오후 2시 장편면 서부리의 갑산군 천도교당에서 정수익(鄭秀益)·정창원(鄭昌元)·김용균(金龍均)·조석준(趙錫俊)·조영호(趙英浩)·조병학(趙秉學)·박문옥(朴文玉)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정수웅의 지시를 받은 조병학은 태극기를 게양하였으며, 200여 명으로 구성된 시위대의 일원으로 만세시위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일제 군경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갑산군청을 습격하였다. 그러자 급파된 혜산진 수비대가 일제 군경과 함께 시위대를 강격하게 진압하였다. 3월 15일 갑산군 만세시위에 참여한 명목으로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