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宗元
趙宗元1882. 9. 9 ~ 1968. 10.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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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2년 9월 9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덕정리(德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홍성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4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한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李載萬)과 금마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협의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동지로 결합하면서 구체적으로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민영갑 등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의 이원교(李元交)의 집 마당에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이 공연되는 것에 맞추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공연에 참석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엿보다가 오후 8시경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관객 수십 명이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으나, 잠시 후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다음 날 4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공연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나가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날의 시위 직후 일제 경찰의 시위 참여자 색출·검거 과정에서 가담자로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투옥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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