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鍾運
曺鍾運1896. 11. 6 ~ 1971. 4.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해남군 해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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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896년 11월 6일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삼산면(三山面)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해남군 해남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해남면에서는 김동훈(金東勳)이 4월 초부터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 준비를 하였다. 만세시위 당일인 4월 11일은 해남면의 장날이었고, 당일 10시경 노상에서 김동훈을 만나 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정오 무렵부터 천병유의 집에 숨겨둔 커다란 태극기를 꺼내 들어 앞세우고 김동훈·김흥봉(金興鳳)·안창석(安昌錫)·이형춘(李亨春) 등과 함께 종이 깃발을 군중에게 배부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운집한 군중은 해남장터로 행진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그해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0년 11월 25일 해남에서 차가인동맹(借家人同盟)을 조직할 때 임시의장을 맡고 교섭위원에 선출되었다. 차가인동맹은 집세 인하, 1년 1회씩 집주인의 수선 등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집주인들이 반응하지 않자 1931년 3월 22일 해남 해월관(海月館)에서 제2회 차가인대회가 열렸을 때 사회를 보았고 위원으로 뽑혔다. 대회에서 차가인동맹은 상설조직인 조합으로 변경하고 집세 3할 인하 등을 다시 주장하였다. 1935년 5월 해남군 삼산면(三山面) 면협의회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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