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鍾斗
趙鍾斗1889. 12. 15 ~ 1953. 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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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89년 12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지곡리(池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청양군 목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양군 정산면에서는 1919년 4월 5일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이 서정리(西亭里)에 위치한 정산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3시경부터 홍범섭 등이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만세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 헌병은 해산을 종용하면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총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이날의 만세시위는 종료되었지만, 다음날 권흥규의 시신을 목면 안심리(安心里)에 위치한 집으로 운구하면서 더욱 큰 규모의 만세시위로 발전하게 되었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과 수많은 만장(輓丈)이 뒤따르는 운구행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였다. 이미 전날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운구행렬이 마을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길목마다 주민들이 참여가 지속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때 운구행렬 속에서 태극기가 배포되었고, 운구행렬을 뒤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안심리를 향해 행진하였다. 일제는 정산의 헌병과 함께 공주(公州) 주재의 헌병까지 정산으로 급파하였다. 공주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운구행렬과 마주치자마자 즉각적으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김국삼(金國三)·유행길(柳行吉)·장응렬(張應烈)·윤광원(尹光遠) 등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일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에 구금되었고, 1919년 4월 26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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