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再福
曺再福1897. 10. 8 ~ 1952. 4.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1919년 영천군 영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1897년 10월 8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지곡면(知谷面, 현 영천시 화북면) 오산동(梧山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규열(曺奎烈)이다. 1919년 4월 12일 전개된 영천군 영천면(永川面) 만세시위에서 사용된 깃발을 제작하였다.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영천군의 만세시위는 신촌면(新村面) 입석동(立石洞, 현 화북면 입석리)의 홍종현(洪鐘顯)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당시 지곡면 오산동에 사는 조주생(曺周生)의 집에 머물고 있던 홍종현은 평소 한국의 독립을 열망하고 있다가, 영천면 장날을 이용해 4월 12일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3월 11일 홍종현은 먼저 오산동의 한 상점에서 붉은 목면(木棉)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조병진(曺秉鎭)의 집으로 가서 만세운동에 대하여 이야기한 후, 거사에 사용하기 위한 깃발에 태극무늬를 그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조병진은 건네받은 붉은 목면에 태극무늬를 그려 주었고, 홍종현은 다시 이를 받아서 조주생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홍종현으로부터 조주생의 집에서 다음날 만세시위에 쓰일 깃발에 ‘대한독립만세 군위 양곡 홍종현(大韓獨立萬歲 軍威 良谷 洪鐘顯)’이라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자 흔쾌히 승낙한 후 홍종현이 가지고 온 붉은 목면에 부탁받은 문구를 써 주며 만세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튿날 홍종현은 오후 3시경 영천면 창구동(倉邱洞)에 위치한 영천공립보통학교 문 앞의 시장에서 조병진 등에게 도움을 받아 제작한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터에 모여 있던 주민과 장꾼들, 그리고 학생들이 호응하며 만세시위에 합세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홍종현이 그곳을 순찰 중이던 순사보조원에게 체포되면서 만세시위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과전동(果田洞)의 김정희(金正希)는 그날 밤 구입한 흰색 면포에 혈서로 ‘대한독립만세’라고 적은 깃발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19년 5월 8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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