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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鏞台

趙鏞台

1871. 9. 26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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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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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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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군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1년 9월 2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오곡리(烏谷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화(聖和)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군북면 만세시위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한 이찬영(李讚榮)·조한휘(趙漢輝)·한관렬(韓灌烈) 등 함안지역 인사들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서울 만세운동 소식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3월 5일 군북면 유림과 민족주의 인사들은 사촌리(舍村里) 조용대(趙鏞大)의 사랑채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이후 구체적인 계획은 3월 10일 서산서당에서의 비밀 회합에서 결정하였는데, 이 자리에 참석하였다. 여기서는 거사일을 3월 20일 군북면 장날로 하고, 각 지역별 연락과 군중 동원,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수천 장의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 등 역할을 분담하였다. 이때 동지를 규합하고 군중을 동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독립선언서는 문장이 길고 어려워서 내용을 줄이고 알기 쉽게 수정하여 전단 형태로 만들었다. 3월 20일 만세시위에 참석하기로 뜻을 같이한 사람들과 함께 군북면 장터로 갔다. 정오에 시작하기로 했던 시위는 오전 9시 신창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을 앞당긴 것은 전날 함안 읍내 만세시위로 인해 일본군이 출동해 있었고, 일제 경찰과 밀정의 감시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시가행진이 시작되었을 때,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오전 시위가 일제 군경의 진압으로 해산되자, 군북면 장터로 이동하여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군북면 장터 인근 냇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이 시작 신호였다. 시위대가 순식간에 5,000여 명까지 불어나서 함안 지역 최대의 만세시위로 발전하였다. 당시 선두에서 시위대를 지휘하며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만세 시위대의 규모와 기세가 최대에 이르자, 일제는 전날 함안 읍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들어와 있던 일본군 중포병대대까지 출동하여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다. 이때 군중들이 굴하지 않고 경찰관 주재소를 향해 나아가면서 투석전을 전개하고 일제 군경과 몸싸움을 벌이는 데 앞장섰다. 결국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일제 군경이 총을 쏘았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 현장에서만 20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때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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