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鏞晉
趙鏞晉1894. 9. 17 ~ 1961. 9.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1919년 창원군 천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1894년 9월 17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천가면(天加面) 동선리(東仙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조용진(趙鏞秦)을 썼다. 1919년 4월 11일 창원군 천가면 가덕도(加德島,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가덕도 만세시위는 3월 중순 이후 군내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이 들리면서 그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한편으로 지역 민족주의 인사 양흥석(梁興錫)이 서울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은밀히 가지고 돌아온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양흥석을 중심으로 최세권(崔世權)·김동원(金東洹)·이상운(李相云) 등 지역인사들과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논의하였다. 그리고 4월 11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거주지인 동선리 가덕진(加德鎭)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시위계획을 은밀하게 각 마을에 전하는 동시에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수십 개도 제작하였다. 이때 주도층과 함께 역할을 분담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4월 11일 오후 3시 경부터 주도자들과 함께 가덕진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사전 연락 등을 통해 모인 약 300명의 주민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선창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최세권 등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섬 내 마을을 행진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군 헌병대가 총검을 휴대하고 출동하여 강제 진압에 나섰고, 시위대와 함께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밤 주도층과 함께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오후 8시 30분 경부터 시작한 만세시위에 약 150명이 참가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낮의 시위와 동일하게 만세를 부르며 마을을 행진하였다. 다시 일본군 헌병대가 출동하였고, 폭력적 진압과 함께 주도자 검거에 나섰다.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대를 이끌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당시 부산감옥 마산분감으로 불리던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