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鏞元
趙鏞元1886. 5. 23 ~ 1972. 2.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함안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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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6) 1886년 5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죽남면(竹南面) 유현리(柳峴里)에서 태어났다. 홍릉참봉(洪陵參奉)으로 재직하다가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보고 사직하였다. 1919년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에 의해 서울 만세운동 소식이 함안지역에 전해졌다. 이를 계기로 1919년 3월 19일 함안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9일 정오 비봉산(飛鳳山)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올리고, 봉성동(鳳城洞) 태평루(太平樓)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벌이면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장날을 맞이하여 읍내로 나온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최초 수백 명이었던 시위대는 삽시간에 3,000여 명으로 늘었다. 함안주재소 경찰들은 지원 출동한 마산(馬山)경찰서 경찰과 합세하여 시위대 진압에 나섰으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다. 특히 폭력적 진압이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적 기관들에 돌과 기와 조각을 던지고 내부로 진입하여 물리력을 행사하였다. 함안군청, 함안경찰관주재소, 일본인 학교, 우체국, 법원출장소 등이 대상이었다. 시위 주도자로 재판정에 섰을 때, 일제 경찰 등 증인들이 한결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군중을 선동하고, 함안 경찰관주재소·함안 군청 안에서 폭행을 자행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함안 읍내 만세시위는 결국 마산의 일본군 중포병대대가 출동하여 본격적 진압에 나서면서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대대적으로 시위 주도자와 참가자 검거 작전이 벌어졌다. 이때 수많은 사람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1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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