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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鏞宇

趙鏞宇

1887. 4. 24 ~ 19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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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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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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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김해군 장유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87년 4월 24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장유면(長有面) 신문리(新文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 장유면 무계리(茂溪里)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장유면 유하리(柳下里)의 김종훤(金鍾烜)은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의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4월 11일 김종훤은 장유면 신문리 외딴 집에서 김승태(金升泰)·조순규(趙順奎)·이강석(李康奭)·최현호(崔鉉浩) 등과 만나 이튿날인 4월 12일 무계리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구체적인 준비 계획으로 태극기 제작과 동지 규합, 군중 동원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이때 주도자들에게서 무계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적극 가담하기로 작정하였다. 4월 12일 김승태가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무계리 시장으로 들어오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또한 다른 마을에서도 주도 인물들의 인솔 하에 사람들이 모여 들어 시위대는 3,000여 명에 이르렀다. 12시 정오 김종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주도 인물들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에 따라 독립만세를 크게 부르며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펼쳤다. 시위대가 북을 치고 농악용 나팔을 불면서 거리를 행진할 때 선두에서 활약하였다. 3,000여 명의 시위대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두행진을 벌이자 출동한 일제 군경이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시위대와 함께 헌병주재소로 달려갔다. 당황한 일제 헌병들은 주재소로 돌입하려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고, 손명조(孫明祚)·김선오(金善午)·김용이(金龍伊)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격분하여 시위대와 함께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김해 읍내 분견소에서 증파된 일제 헌병이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시위대는 결국 해산하고 말았다. 일제 군경에 의해 시위 주도자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동반한 취조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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