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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5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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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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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평산(平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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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1919년 평산군 보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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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2)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보산면(寶山面) 산막리(山幕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62세이므로 185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7일 평산군 보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7일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신관식(申寬湜) 등과 함께 보산면 운천리(雲川里)에 위치한 사장(沙場)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4월 8일 남천헌병분견소 헌병과 헌병보조원 3명이 산막리에 나타나서 동네 주민 50여 명을 사장으로 모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제 헌병들은 그 자리에서 전날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을 색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이 주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현장에 있던 조백선(趙伯善)이 총을 맞고 중상을 입은 후 결국 사망하였고, 다른 주민 2명도 부상을 입었다. 이에 격분한 조백선의 동생 조정삼(趙丁三)을 비롯한 피해자 친족들이 일제 헌병을 몽둥이로 구타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이 이들을 진압하면서 추가로 20여 명을 연행하였다. 이때 신관식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 위반, 상해죄, 살인미수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우리의 독립운동은 정당하고 자유를 되찾는 일도 또한 정당하다”면서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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