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斗煥
曺斗煥1884. 3. 1 ~ 1931. 12.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의령군 상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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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3) 1884년 3월 1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상정면(上井面) 덕교리(德橋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균두(曺均斗)이다. 1919년 3월 20일 상정면 덕교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령군에서는 3월 14일 의령 읍내에서 만세운동이 최초로 거행된 후, 3월 20일까지 거의 매일 만세시위가 지속되었다. 이후 연일 군내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지자, 같은 마을의 조균구(曺均九)·김구현(金九鉉)·조균수(曹均壽)·김응현(金應鉉)·박용주(朴龍周) 등과 함께 거사를 결의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거사일을 3월 20일로 정하고, 밤에 동네에서 시작해 상정면사무소까지 이동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거사에 사용하기 위해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과 손에 들 수 있는 태극기를 제작하였고, 만세시위에 참여할 주민들에게 연락하는 일도 분담하였다. 3월 20일 밤 조균구·김구현·김응현 등과 함께 연락을 받고 거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약 30여 명 앞에서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만세를 선창하자, 사람들도 함께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이어서 시위대를 이끌고 상정면사무소로 이동한 후, 주도자들과 함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면장 강재수(姜載秀)를 시위대 앞에 세우고 면내를 돌며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약 2시간에 걸쳐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 일로 조균구·김구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으며 취조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2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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