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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東先

趙東先

1871. 2. 18 ~ 1930.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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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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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南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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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원군 덕과면
  • · 사매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1년 2월 18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덕과면(德果面) 신양리(新陽里)에서 태어났다. 만세운동 당시 덕과면 서기(書記)로 근무하였다. 1919년 4월 덕과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31일 덕과면 면장이었던 이석기(李奭器)와 함께 덕과면사무소에 모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식수기념일로 매년 연례행사가 치러지던 4월 3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이석기는 4월 2일 밤 자택에서 ‘경고 우리 동포 여러분’이라는 제목으로 조선독립의 취지를 기재한 문서 21통 중에서 15통을 덕과면사무소 소사(小使) 김광삼(金光三)에게 주어 남원군 내 각 면장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4월 3일 식수기념일 행사는 덕과면 신양리 뒷산의 도화곡(桃花谷)에서 열렸으며, 헌병주재소장과 헌병보조원을 비롯해 주민 8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석기는 식수행사가 끝나자 행사에 참석한 면민들에게 탁주를 대접한 후, 만세시위의 필요성에 대해 연설한 뒤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이승순(李承珣)·이풍기(李豊基)·이석화(李石和)·복봉순(卜鳳淳) 등이 호응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교통이 번잡한 전주(全州)에서 남원 사이의 큰 도로로 나가 사매면(巳梅面) 오신(梧新)헌병주재소 앞을 통과하여 남원 읍내로 진입하려고 하였다. 도중에 사율리(沙栗里)를 지날 무렵 이석기는 준비해 놓았던 격문을 읽고 배포하여 시위대의 사기가 한층 더 높아졌다. 시위대가 오신헌병주재소 앞 큰길에 도착해 독립만세를 외칠 무렵, 남원헌병분대에서 긴급 출동한 무장 헌병의 탄압으로 만세시위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이석기와 함께 시위 사태에 책임을 지기로 하고 헌병주재소에 자진 체포되었다. 그 덕분에 나머지 시위대는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이후 가혹한 취조를 받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19년 5월 1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여, 같은 해 7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 6월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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