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大鉉
曺大鉉1896. 10. 3 ~ 1939. 6.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1919년 강릉군 강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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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3) 1896년 10월 3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성덕면(城德面) 노암리(魯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7일 강릉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강릉군에서는 4월 2일 강릉면 장터에서 감리교회 목사 안경록(安慶祿)과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 시위가 강릉군 최초의 만세운동이었기 때문에 이후 일제 경찰은 성내리(城內里)에 위치한 감리교회 옆에 초소를 설치하고 삼엄하게 감시하였다. 김진숙(金振淑)·최선근(崔善根)·최선재(崔善在)·최선호(崔善浩)·정재화(鄭載和)·최돈옥(崔燉玉) 등과 함께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강릉면에 있는 이윤식(李允植)의 상점에서 모여 다음 장날인 4월 7일에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 전날 이윤식의 상점에서 태극기 제작을 마치고 사람들을 규합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 일제 경찰이 이윤식의 집을 급습하면서 태극기를 모두 몰수당하였다. 4월 7일 아침 만세시위에 쓸 태극기를 가지러 이윤석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제 경찰의 습격 상황을 알게 된 후,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최선근의 상점에 모여 다시 거사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만세시위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하고, 급히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들었다. 정오 무렵 태극기를 들고 장터 중앙으로 나가 이를 뿌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였고,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더불어 장터 가까이에 위치한 강릉경찰서로 향하였지만, 일제 경찰들이 급파되어 만세시위 행진을 저지하였다. 이에 장터에서 더 이상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주도자들과 각각 시위대를 나누어 화부산(花浮山)과 남산(南山)에 올라가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이때 약 3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부르며 밤늦게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4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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