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均壽
曺均壽1886. 6. 7 ~ 1952. 8.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의령군 상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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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886년 6월 7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상정면(上井面) 덕교리(德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의령군 상정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령군의 만세운동은 총 9차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 만세시위는 주로 3월 중순에 집중되었는데, 시작은 3월 14일 의령군 중심가에서 일어난 읍내 만세시위였다. 이후 매일 함께 만세시위가 군내 곳곳에서 전개되었으며, 서로 영향을 받으며 시위 열기를 고조시켜 나갔다는 특징이 있다. 3월 14일 이후 연일 군내 만세시위가 이어지자, 상정면 덕교리에서도 조두환(曺斗煥)·조균구(曺均九)·김구현(金九鉉)·김응현(金應鉉)·박용주(朴龍周) 등이 모여서 거사를 논의하였다. 이때 함께 참여하였다. 거사일은 3월 20일로 결정하였고, 해가 진 후 동리 중심부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시작하며, 이후 시위 군중과 함께 상정면 면사무소로 행진하기로 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0일 밤, 시위 계획을 주도한 조두환·김구현 등과 함께 동리 중심부로 나아갔다. 연락을 받고 거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3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계획대로 시위대를 이끌고 상정면 면사무소로 행진을 시작하였고 면사무소에 이르러서는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는 한편 면사무소에 들어가서 면장 강재수(姜載秀)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강요하였다. 이후 면장을 데리고 나와서 시위대의 선두에 세우고 면내 중심지를 ‘독립만세’를 부르며 돌았다. 만세시위는 약 2시간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밤이 깊어지면서 해산하였다. 당일 만세시위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마쳤으나, 이후 조두환·김응현·박용주 등 시위 주도자들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2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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