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鄭在喆

鄭在喆

1879. 5. 5 ~ 1950. 3. 2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在喆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공주(公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1919년 공주군 정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79년 5월 5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석송리(石松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재철(鄭載哲)을 썼다. 1919년 4월 1일 공주군 정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안면의 만세운동은 이 지역의 대표적 유림인 석송리의 이기한(李綺漢)에게서 시작되었다. 이기한은 1919년 3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공감하여 자신의 고장에서도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4월 1일 주민모임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이기한과 이병억(李秉億)의 연설을 듣고 호응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기한이 태극기와 함께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고, 주민들과 대열을 형성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광정리(廣亭里)로 향하였다. 행진하는 동안 지나는 길목마다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광정리에 도착했을 때 참가자는 800여 명에 이르렀다. 이기한의 지휘에 따라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광정리의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공주경찰서는 정안의 만세시위를 보고 받고 순사 기하라 신지로(木原新次郞), 순사보 이근남(李近南) 등 10여 명을 광정리로 급파하였으나, 이미 만세시위는 해산된 후였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석송리로 돌아와 주막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광정리로 향하는 일제 경찰의 차량을 목격하였다. 이에 이병림(李秉霖)·이동안(李東案)·문백룡(文白龍)·김순명(金順明)·장기현(張基鉉) 등 주민들과 함께 차량의 진행을 가로막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자, 일제 순사와 헌병들은 총기 발포로 대응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동안·문백룡·김순명·장기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0월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그해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인정받았으나, 다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