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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金甲洙

미상 ~ 19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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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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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중흥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7) 출생년월 및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백두산 서쪽 압록강 건너편의 서간도에는 1910년을 전후하여 나라 밖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독립 전쟁을 준비하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일찍부터 서간도의 류허현(柳河縣)과 퉁화현(通化縣)에서는 부민단이 중심이 되어 독립군 기지 개척과 한인 자치제를 발전시켜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13일 부민단은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한족회를 발족시켰고, 한족회는 서간도의 유력한 항일 단체가 되었다. 한편, 1919년 11월 한족회의 일부 세력이 분화하여 퉁화현 팔도구(八道溝)를 근거로 하여 백인균(白寅均, 일명 운해(雲海), 운령(雲岺))을 총재로 하는 대한독립중흥단(大韓獨立中興團)을 조직하였다. 중흥단은 퉁화현 남부 및 지안현(輯安縣) 노령(老嶺) 이남 일대에 세력이 미쳤고, 결사대를 국내에 보내어 일제 관공리 암살, 군자금 모집 등의 항일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은 중흥단을 토벌하기 위한 토벌대를 편성하여 1920년 6월 24일 중흥단 총재 백인균의 집을 포위 습격하였으나 백인균은 이미 피신한 뒤여서 실패하였다. 관뎬현 대황구(大荒溝)에 설치된 중훙단 지단에서 평북 삭주군 등지로 결사대원을 보내어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자 이를 탐지한 벽동경찰서에서 8월 29일 중흥단 지단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1921년 관뎬현 태공구(太公溝)에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중흥단 단원으로 동지 10여 명과 함께 은밀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벽동경찰서에서 이를 알아채고 3월 5일 새벽 요시다(吉田) 경부보 등 일본 경찰 11명이 압록강을 건너 태공구로 기습 공격을 하였다. 이에 동지들과 함께 기습한 일본 경찰을 향해 일제히 총격을 가하면서 격전이 벌어졌다. 1921년 3월 5일 일본 경찰과의 교전 끝에 중흥단 총무 전연태(全延泰), 결사대장 문학신(文學信)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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