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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有福

鄭有福

1898. 4. 15 ~ 197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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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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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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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길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8년 4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길안면(吉安面) 천지리(泉旨里)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3월 13일 이상동(李相東)의 안동면 1인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17일 예안면·3월 18일 안동면과 도산면(陶山面) 만세운동에 이어 안동군에서 네 번째로 일어난 만세운동이었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이었다. 손영학 등은 만세운동의 전국적인 확산과 안동군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손영학·김정익 등은 만세운동을 실행에 옮길 것을 결의하고 비밀리에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였는데, 이때 동참하게 되었다. 거사 장소는 오대동과 가까운 길안면 천지시장으로 택하였으며, 장이 서는 3월 21일 만세시위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거사 당일 아침 일찍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천지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3시경 참여자과 함께 모두 모였을 때 손영학은 ‘대한독립운동’이 적힌 깃발을 장터 한 가운데에 꽂았다. 이어 주도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만세소리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많은 사람의 참여로 만세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자 35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길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불렀고, 주도자들이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일제 경찰들이 막아서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잠깐의 휴식 이후 손영학을 선두로 시위대와 함께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를 포위하고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일제 경찰들이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시위대를 저지하자 주도자들이 나서서 투석전을 벌이며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시위는 자정 무렵 일제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공포를 발포하면서 군중이 흩어지자 끝이 났다. 다음 날부터 일제 경찰은 주도자와 참여자 검거작전을 펼쳤고 곧 붙잡혔다. 만세운동 참여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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