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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준

孔昌俊

1877 ~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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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공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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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문천(文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문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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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종교
  • · 흥업단
  • · 만주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77년경 함경남도 문천(文川)에서 출생하였다. 단, 출생시기에 대해서는 1880년이라는 의견이 있다. 본관은 문천(文川)이고, 호는 심연(心淵)이다. 이명은 공창준(孔昌俊), 또는 공창준(公昌準)이다. 독립운동가 공진원(公震遠)의 부친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洪範圖) 부대에 참가하여 백두산 부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나철(羅喆) 등이 조직한 대종교(大倧敎) 교인을 중심으로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에서 흥업단(興業團)이 조직되자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흥업단은 각 현에 지단을 설치하고 만주로 건너오는 한국 청년들을 모집하여 단장 김호(金虎)가 경영하는 백산학교(白山學校)에 보내는 한편,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흥업단의 부단장은 김혁(金赫), 총무는 윤세복(尹世復), 재무는 이원일(李源一), 경호는 오제동(吳濟東), 교섭은 김성규(金星奎) 등이었고, 단원은 약 200명 정도였다. 흥업단은 청산리대첩 이후 남만주 창바이현(長白縣) 일대에서 대한독립군비단·대진단·태극단·광복단·서로군정서 등과 더불어 기세를 떨쳤다. 1920년 일제가 이른바 ‘간도 출병’이란 명목으로 간도 독립군 기지와 한인 사회를 습격하여 학살과 만행을 저지르자, 이를 피해 부하 500여 명과 함께 러시아 우스리스크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1921년 음력 10월경에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연계하여 다시 안투현(安圖縣)으로 이동하였다. 1923년 3월 지린성(吉林省) 화뎬현(樺甸縣)에서 단군을 기념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단조기념발기회(檀祖紀念發起會)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단조기념발기회의 발기 요지는 ‘첫째 단군을 숭배하기 위해서 유도(遺都)에 기념비를 세우고 사적(事蹟)을 등재하며 동족의 친목을 도모함, 둘째 회원은 한국인 남녀 17세 이상자로 함, 셋째 중앙의 위치는 백두산 신시(神市)로 정함, 넷째 중앙 총회장은 국내외 분지회 확장 후에 선정함, 다섯째 각지 분지회 성립 후에는 발기처로 통지하여 상호 연락케 함, 여섯째 회비는 1인당 소은(小銀) 2각(貳角)으로 함, 일곱째 회원은 성미(誠米)를 저축함, 여덟째 회원은 본회의 목적을 위하여 특연(特捐)이나 각지 선전에 힘쓴다’라는 것 등이었다. 1930년 7월 웨이허현(葦河縣)에 사는 김광택(金光澤)의 집에서 만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조직되자 창립당원으로 가입하였다. 만주 한국독립당은 중앙에 6개 위원회를 두고, 지방에 지당부(支黨部)와 구당부(區黨部)를 두었다. 중앙위원장은 홍진(洪震)이었고, 각 위원장은 총무 신숙(申肅), 조직 남대관(南大觀), 선전 안훈(安勳), 군사 이청천(李靑天), 경리 최호(崔灝), 감찰 이장녕(李章寧)이었다. 당의 강령은 삼본주의(三本主義), 즉 민본정치의 실현·노본경제(勞本經濟)의 조직·인본문화의 건설을 채택하였다. 당군(黨軍)으로 이청천을 사령관으로 한 한국독립군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의 합법기관인 한족자치연합회를 지도 육성하면서 북만주 지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가입 후 조직부 위원으로 당원 모집과 보급품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한국독립당은 중앙위원회 결의를 통해 한국독립군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중국의 리두(李杜)·팅차오(丁超) 등이 이끄는 지린자위군(吉林自衛軍)을 비롯하여 카오펑린(考鳳林)·오이청(吳義成)부대 등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조경한·권오진 등이 거느리는 한국독립군의 한 부대와 합류한 김창환(金昌煥)·이규보(李圭輔)·정남전(鄭藍田)·한해강(韓海岡)·차철(車澈), 그리고 그를 비롯한 일부 간부들은 1932년 5월 1일 아청현(阿城縣) 대석하(大石河)에 있는 당지부 소재지이며 제1대대장 오광선의 농장에서 한국독립군 비상회를 열었다. 여기서 “군사 운동을 다시 정돈하되 대석하를 임시 중심지대로 정하여 이미 분산된 부대와 사병을 수습하고 신병을 계속 모집·훈련할 것” 등 4가지 사항을 결정하였다. 조경한 등 한국독립군 유격독립여단은 이청천이 이끄는 한국독립군 부대에 합류하여 공동 보조를 취하게 되었다. 1932년 9월 쌍성보(雙城堡)를 공략하여 쌍성보성을 점령하고 많은 군수물자를 노획하였고, 2,000여 명의 만주국군을 생포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만주사변 이후인 1937년에 사망하였다. 단, 사망시기에 대해서는 1936년 한국독립당과 한국독립군의 상황을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본부에 보고하기 위하여 난징(南京)에 갔다가 4월 15일 병으로 서거하였다는 의견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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