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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진

鄭錫珍

미상 ~ 189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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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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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나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羅州)로 알려져 있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석진(鄭錫振)을 썼다. 1896년 전라남도 해남군수로서 기우만(奇宇萬) 등과 함께 나주의병부대의 결성과 활동을 주도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배하기 위한 계획을 본격화하였고, 일제의 영향 하에 갑오개혁이 추진되었다. 1895년에는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이어, 아관파천(俄館播遷)까지 일어났다. 그러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봉기하여 일본을 구축하고 국권을 지키고자 하였다. 전남 나주 일대는 의병항쟁이 가장 거세게 일어났던 지역 중 하나였다. 전남에서 가장 먼저 봉기한 의병장은 전남 장성(長成)의 기우만으로, 1896년 (음)1월 전라도 일대에 고종의 환궁·개화파 처단·구제(舊制)의 복구 등을 위해 기의(起義)하겠다는 내용의 격문을 송부하였다. 격문을 받은 나주의 양반 유생들과 향리층이 이에 적극 호응하여, 승정원 주서(注書)를 지낸 이학상(李鶴相)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즉각 창의(倡義) 준비에 나섰다. 당시 해남군수로서 향교의 유생들에게 거의(擧義)할 것을 설득하는 등 나주에서 의병부대의 결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나주의 의병부대는 1896년 (음)2월 초 조직된 즉시 활동을 시작해 불법 수탈을 자행하고 단발령을 강요한 참서관 안종수(安宗洙) 등을 처단하였으며, 고종에게 상소하여 개화정책을 중단하고 구제를 복구할 것을 청하였다. 나주 의병부대는 기우만이 이끌고 있었던 의병부대를 비롯하여 다른 지역의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의병항쟁이 거세지자 조정에서는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과 친위대를 전라도로 파견하여 의병부대의 해산을 종용하였다. 결국 나주 의병부대는 1896년 (음)2월 26~27일에 걸쳐 해산하였다. 이후 의병항쟁의 연루자들을 색출해 처벌하는 과정에서 주도자로 지목되었다. 이 일로 나주까지 진출한 진압군 대장 김병욱(金炳旭)의 명령을 받고 출동한 순검과 병정에게 붙잡혀 압송되었고, 같은 해 3월 10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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