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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옥

鄭琦玉

186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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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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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寧越)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영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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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우변면(右邊面) 하금마(下金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8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8월 영월군 우변면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의병활동을 펼쳤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부대에 참여하면서 의병활동은 전국적인 의병전쟁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1908년 1월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에는 출신지인 강원 지역을 비롯하여 경기·충청의 수많은 의병들이 참여하였다. 서울 진공 작전 실패한 이후에도 강원도에서는 여전히 유격전의 형태로 많은 의병항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강원도의 특성상 직업군이 포수층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산악지형을 활용한 유격전의 형태로 일본군의 규모와 무기 상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08년 8월 7일 영월군 우변면 가오개리(加五介里)에서 잡화상(雜貨商)을 하는 이준용(李俊用)으로부터 240원과 물품 12개 등을 군자금 및 군수품 명목으로 모집하였다. 이러한 군자금 및 군수품의 수집은 1907년 후기 의병의 규모와 인원이 늘어나면서 이를 유지하고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작업이었다. 군자금 모집 활동을 이어 가다가 1908년 8월 13일에 제천경찰서에서 파견된 일본인 순사 3명, 한국인 순사 2명에 의해 영월 좌변면(左邊面) 거안리(巨安里)에서 붙잡혔다. 같은 해 9월 30일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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