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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周鉉

鄭周鉉

1891. 1. 20 ~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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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周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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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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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1월 20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아청리(衙廳里)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약종상을 하던 중 1907년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평남지회에서 활동하였다. 평남지회는 평양의 대성학교·숭실학교·일신학교 등의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일제는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의 ‘안악사건(安岳事件)’을 조작하여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암살미수사건으로 둔갑시켰고, 이에 따라 160여 명이 일제히 검거되었다. 당시 안명근은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무관학교의 설립자금을 모집하다가 민병찬의 밀고로 붙잡혔다. 일제는 이 사건을 확대시켜 1911년 9월 양기탁(梁起鐸)·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윤치호(尹致昊)·전덕기(全德基) 등 신민회 간부들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회원 수백 명을 함께 검거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이후 104명과 함께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모살미수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무죄를 받았다. 그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이 일로 약 2년간의 옥고를 겪는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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