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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判順

趙判順

1894. 1.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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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判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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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鎭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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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황극교(황석공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894년 1월 3일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 성수면(聖壽面) 구신리(求臣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태진(趙泰珍), 조화석(趙華石)이다. 활동 당시에는 목재상(木材商)을 하였다. 1932년 (음)2월 4일 전북 김제군(金堤郡) 김제역 근처에 거주하는 박기호의 집에서 권유를 받고 황극교(皇極敎)에 가입하였다. 황극교는 1926년 (음)10월에 창시된 황석공교(黃石公敎)를 개명한 것으로, 일제의 지배를 거부하고 새로운 독립국가의 건설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결성된 종교단체였다. 중심세력인 김영식(金靈植)·은세룡(殷世龍)·홍명선(洪明善) 등은 철저한 반일성과 민족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종교단체로 가장한 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의 기본이념인 신(信)·애(愛)·경(敬)의 기치를 내걸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반일사상과 민족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들과 함께 황극교 교도로 활동하면서 노중옥 등을 설득하여 황극교에 입교시켰으며, 은세룡 등과 비밀리에 모여 황극교의 전파를 통한 독립정신 고취 방안을 모의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황극교는 1933년경부터 고천제(告天祭)인 ‘천류(天禷)’를 거행하며 조직을 확장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식 확산을 꾀하였다. 이때 전북 임실군(任實郡) 관촌면(館村面) 신흥사(新興寺)에서 임실 지방 교도들과 함께 천류 행사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1937년 일제는 황극교의 활동을 ‘국체(國體)를 변화할 목적으로 한 결사체(結社體)’로 규정하고, 은세룡을 비롯해서 황극교와 관련된 수백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1940년 10월 30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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