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趙思明

趙思明

1876. 5. 8 ~ 1973. 5. 2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思明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6년 5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귀단동(歸團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횡성(橫城)이다.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국으로 전해지면서 안동군의 유림들도 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특히 3월 13일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만세시위는 안동군의 첫 만세운동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안동군 유림 중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을 계획한 인물은 임북면(臨北面) 정산동(鼎山洞)에 사는 조수인(趙修仁)이었다. 조수인으로부터 만세운동 제의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주저 없이 동참하게 되었다. 조수인·김진휘(金振輝)·조병건(趙秉健)·이맹호(李孟鎬)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17일 예안면 장터에서 시위를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거사일이 정해진 후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유림들 외에도 예안읍 장날에는 많은 사람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중에서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은 면서기인 이남호(李南鎬)·이광호(李洸鎬)와 잠업순회교사 이시교(李時敎) 등과 함께 대규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예안공립보통학교(禮安公立普通學校) 학생 동지를 규합하였다. 또한 신응한(申應漢)과 민태규(閔泰圭)가 중심이 된 예안 만촌교회 기독교도들도 같은 날에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17일 거사 당일이 되자 태극기를 숨기고 예안읍 장터로 향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에서 때를 기다리다가 선성산(宣城山)에서 울린 만세 소리에 군중을 이끌고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펼쳤다. 신상면이 이끄는 대규모 시위대 및 만촌교회 기독교도와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장터 곳곳을 행진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동참하면서 시위대 규모가 1,500명까지 증가하자 시위대를 이끌고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동봉(李東鳳)이 선두에 서고 시위대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길가에 나와 있던 학생과 주민들도 시위대를 호응해 주었다. 그러나 만세시위 소식에 예안경찰주재소의 일제 경찰은 안동에서 미리 파견한 수비대와 함께 무력으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주도자 등 15명을 붙잡았다. 주도자들이 현장에서 붙잡히면서 군중도 흩어지고 만세시위도 중단되었다. 해산한 이후에도 장터를 떠나지 않고 구속자 석방을 위하여 다시 모였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주재소로 가서 구속자들을 탈환하기로 결정하였다. 오후 6시경 조수인·김진휘 등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에 이르자 ‘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구금했느냐’며 항의하며 석방을 요구하였다. 요구가 거부되자 군중과 함께 저지하는 수비병을 제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돌을 던져 주재소 문과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 분노를 표출하였다.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은 더 많은 수비대를 급파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 결과 동료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는데, 그 숫자가 25명에 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인이 휘두른 칼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 이원영(李源永)의 도움으로 안동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곧 항소하였지만, 그해 4월 24일에 열린 대구복심법원에서도 형량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하여 다시 한번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경성감옥에서 오랜 옥고를 겪었다. 상고 취지문에서 ‘조국의 독립이 기뻐서 만세를 부른 것’이라고 하며 독립 의지를 꺾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