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鳳衡
趙鳳衡1897. 11. 20 ~ 1935. 1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함흥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7년 11월 20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주지면(朱地面) 계동리(溪東里)에서 태어났다. 집안내력 및 성장 과정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함흥군 내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 거주지가 주지면 계동리라는 점, 1921년 3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주지면 계동리에 거주하는 김국보(金國輔)가 3월 21일 주지면 지경리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같은 마을에 살던 김국보가 주도하는 3월 21일 주지면 지경리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2월 28일을 전후로 함흥군에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 및 독립만세 계획이 전해졌다. 이에 2월 28일 오후 9시 무렵 함흥면 중하리의 개신교 예배당에 개신교 신자들과 학생,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모여서 3월 3일 함흥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3일 정오 무렵 함흥 읍내 대화정에서 학생, 주민,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는 만세시위가 있었고, 이를 기점으로 함흥군에서는 만세시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주지면에서는 3월 4일, 6일, 20일 연달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4일에는 학생, 개신교 신자, 주민 7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주지면 지경리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6일 오후 9시에는 주지면 지경리에 개신교 교인, 학생, 주민 250여 명이 집결한 가운데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20일 오후 2시경 지경리의 장날을 맞이해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날 만세시위는 20~30여 명의 기독교도가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지만, 곧이어 학생, 주민 등이 합류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3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지경리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주재소의 경찰들은 시위대의 해산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지만, 시위대는 그 요구에 응하지 않은 채 조선독립만세를 계속해서 외쳤다. 이에 경찰들은 공포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한 34명의 인사들과 함께 붙잡혔다. 함흥군 주지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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