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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述文

鄭述文

1900. 1. 22 ~ 197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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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述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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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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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청도군 대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0년 1월 22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사촌동(沙村洞)에서 태어났다. 대성면의 장로교회 신자로 신앙생활을 하며,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청도군 대성면 만세운동은 이 지역 장로교회의 조사(助事)로 활동하던 김보곤(金寶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보곤은 평양신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평양(平壤)으로 가던 중, 3월 2일 황주역(黃州驛)에서 우연히 평양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승길(李承吉)을 만났다. 이승길로부터 당시 평양신학교의 사정과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던 파리강화회의 소식, 천도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연합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전해 듣고, 곧바로 고향인 대성면에서 독립만세운동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김보곤은 3월 13일 자신의 집과 향리의 서당 등에서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상황을 전달하며 대성면의 만세운동 계획을 주변 인물들에게 설득하였다. 이날 김보곤으로부터 서정기(徐正基)·조경이(趙景伊)·김타관(金他寬) 등과 함께 다음날인 3월 14일의 유천(楡川)장터의 장날에 학생과 청년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제안을 받고, 즉시 동의하여 동지로 결합하였다. 김타관과 함께 학생·청년들의 동원을 독려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보곤의 지휘에 따라 “3월 14일 유천장터에 집합하여 모두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는 내용의 전단을 밀양보통학교 학생들에게 통지하였다. 이날 밤 김보곤은 자택에서 태극기 24본을 제작하여 서정기·조경이를 통해 다음날의 만세시위에서 배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만세시위 계획이 사전에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3월 14일 유천장터에 대한 경계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이 모두 붙잡히면서 만세시위는 다수의 군중을 모으는 데 실패하여 결국 좌절되었다. 이때 김보곤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만세시위를 계획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일부 취소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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