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년
田千年1894. 7. 10 ~ 1975. 11.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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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94년 7월 10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수류면(水流面, 현 금산면) 구월리(九月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1일 일어난 원평리(院坪里) 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제 지역에서는 천도교 세력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어 만세시위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수류면의 만세운동은 배세동(裵世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3월 13일 전주(全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다수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배세동으로부터 전주의 만세운동 상황을 전해듣는 동시에 수류면의 만세운동을 제안받고, 이에 동의하여 전도명(田道明)·전도근(田道根)·전부명(田富明)·이병섭(李秉燮) 등과 함께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들과 논의하여 수류면의 면사무소 소재지인 원평리에 위치한 원평시장에서 3월 20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0일 오후 6시 경 배세동이 길이 2m 정도의 장대에 태극기를 매고 흔들며 ‘독립만세’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 다수가 시위에 동참하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의 시위는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의 무력 진압에 의해 주도자인 배세동이 체포되고, 주민들은 강제 해산되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동일한 장소인 원평시장에서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배세동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고인옥(高仁玉)·전도명·전도근·전부명·이병섭·이완수(李完秀)·김성수(金成守) 등 남은 동지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수류면의 만세운동을 이어갈 것을 결의했다. 다음날인 3월 21일 전날에 이어 원평시장으로 나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만세시위에 공감한 주민들이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전도명, 전부명 등 동지들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원평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의 만세시위로 인하여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서 조사받은 후, 만세시위 주도자로 파악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1919년 10월 11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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