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永俊
鄭永俊미상 ~ 1923. 7.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 · 대한인거류민단
- · 시사책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대성군(大聖面) 삼달리(三達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는 알 수 없다. 이명은 정채성(鄭彩星)이다. 1920년대 중국에서 대한인거류민단(大韓人居留民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에 거주하던 한국인들 사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를 조직할 목적으로 친목회(親睦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신헌민(申獻民)을 선임하였다. 이후 9월 22일 총회에서 명칭을 대한인민단(大韓人民團)으로 고치고 단장에 여운형(呂運亨)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1920년 1월 9일 다시 대한인거류민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단장에 여운형, 총무에 선우혁(鮮于爀) 등을 선출하였다. 상하이의 거류민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외곽단체로 임시정부 내부무의 지휘와 감독을 받았다. 1920년 5월 거류민단에 가입하여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태평양회의에 제출된 한국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1921년 2월 박은식 등이 국민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우리 동포에게 고함’을 발표하자 그해 3월 5일 조완구(趙琬九)·윤기섭(尹琦燮) 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절대 지지를 옹호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여 국민대표회의 소집에 적극 반대하였다. 1921년 4월 제8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경기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1922년 2월까지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국민대표회의 소집 문제가 임시의정원에서 해결이 불가능해지자 1922년 7월 충분한 토의를 통해 최선의 방침을 마련할 목적으로 임시정부 각원, 임시의정원 의원, 국민대표회 주비위원회 주비원 등이 참여한 시사책진회가 조직되어 여러 차례 토론회를 가졌다. 7월 28일 조완구·조소앙 등 국민대표회 소집을 반대하는 정부옹호파들이 탈퇴함으로써 시사책진회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때 시사책진회에 가입하여 토론회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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