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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범

全聖範

1870. 6. 13 ~ 191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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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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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안의(安義)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안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부대
  • · 전성범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0년 6월 13일 경상남도 안의군(安義郡, 현 함양군) 서하면(西下面) 봉평동(鳳坪洞)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재연(全在淵)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며, 호는 운송(雪松)이다. 성범(聖範)이 자라는 설도 있어서, 전주대(全珠大)라는 이명이 본명일 가능성도 있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6년 5월 전북 태인(泰仁)에서 최익현(崔益鉉) 의병부대가 조직되자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고, 1907년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경남 거창(居昌)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킨 전성범은 문태수(文泰洙) 의병부대의 중군(中軍)으로 활동하였고, 유종환(兪宗煥) 의병부대 등과도 협력하며 경남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1909년 2월 11일에는 부역자의 밀고로 인해 안의에서 안의헌병분견소의 기습을 받아 피해를 입었음에도 체포당하지 않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또한 같은 해 4월에는 거창에서 적과 교전하여 큰 피해를 입히는 등 문태수 연합 의병부대의 맹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항일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함양수비대에 붙잡혔지만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1910년 7월 7일 결국 합천경찰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 일로 1910년 12월 2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 방화, 살인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11년 2월 1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3월 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같은 해 4월 5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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