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서
全基西188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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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6)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양남면(陽南面) 공암리(孔岩里)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집안 배경 및 성장 과정, 직업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김흥서(金興西)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자 서울과 원주(原州)의 군인들의 무장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전기서는 김흥서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충북 영동과 전북 무주(茂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 조달 활동을 한 것이 일제의 재판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1908년 9월 5일((음) 8월 10일) 전기서는 동료 의병 남정순(南正淳), 이덕현(李德賢) 외 3명과 함께 충북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모산리(毛山里)에서, 같은 해 10월 3일((음) 9월 9일)에는 양내면 의희동(義希洞)과 양남일소면(陽南一所面) 모산동(毛山洞)에서 주민들에게 군자금을 징발하였다. 또 같은 해 10월 20일((음) 9월 26일)에는 전북 무주군 북면(北面) 산의실리(山衣實里)에서, 같은 달 24일((음) 9월 30일)에는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순양리(順陽里)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였다. 계속해서 같은 해 11월 27일((음) 11월 4일)에는 영동군 양남이소면(陽南二所面) 묵정리(墨井里)와 남이면(南二面) 하묵정(下墨丁)에서 군자금을 마련한 것이 확인된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09년 4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는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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