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호
田慶浩미상 ~ 1906. 5. 31
관련 단체
- · 민종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생연도나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민종식(閔宗植)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홍주성(洪州城) 전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 중에 사망하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하여 외교권을 강탈하자 국권회복을 위해, 유림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의 잔여 세력 등 각계 각층의 국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의병전쟁이 일어났다. 이설(李偰)과 안병찬(安炳瓚)은 인근 정산군(定山郡)에서 은거하고 있던 민종식을 설득하여 거병하도록 하였다. 이에 민종식은 1906년 3월 15일 대흥군(大興郡) 광수장터(光水市場, 현 예산군 광시면)에서 300~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거병하였다. 그러나 같은 달 17일 청양군(靑陽郡) 합천(合川)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병사들이 흩어지고 민종식은 전북으로 간신히 후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종식은 굴하지 않고 300여 명의 의병을 다시 모아 충남 홍산군(鴻山郡)에서 재기하였다. 이후 5월 13일 서천군(舒川郡), 5월 14일 남포군(藍浦郡)을 점령하고 보령군(保寧郡)을 항복시키면서 군세를 키워갔다. 이후 8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5월 19일에는 홍주성(洪州城)에 입성하였다. 충남에서 대읍인 홍주를 민종식 의병부대가 점령하자 인근의 소규모 의병부대와 유회군(儒會軍)으로 불리는 유림의 군세가 합류하여 병력이 1,1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때 “전태진(田泰鎭)·서기환(徐基煥)과 함께 홍주성으로 분연히 달려왔다(奮然來赴)”는 기록을 통해 이즈음 민종식 의병부대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1906년 5월 31일 일본군은 본격적인 공격을 가하며 홍주성 안으로 진입하였다. 일본군에 맞서 의병부대는 불리한 후퇴전을 감행하였다. 이 때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끝까지 싸웠다. 일제 측이 “적이 혼비백산하여 난사하는 포성이 우리 함성과 어우러져 처절함이 말로 다할 수 없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다. 결국 동료 3인을 포함하여 많은 의병들과 함께 홍주성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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