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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형진

桂亨珍

189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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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계형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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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맹산(孟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맹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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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928년 당시 39세였으므로 1890년생으로 추정된다.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 지덕면(智德面) 양성리(陽成里) 출신으로 본관은 수안(遂安)이다. 고향인 평남 맹산군은 천도교를 믿는 교인이 많아 1919년 3·1운동 때에는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었다. 또한 1922년에는 독립운동 단체인 평남독립단이 군자금을 모으고, 일제 경찰과 교전하는 한편 면사무소를 습격, 파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지역이기도 하다. 평남독립단은 1922년 평남의 덕천군(德川郡)·영원군(寧遠郡)·맹산군의 각 주재소를 일시에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단원 100여 명이 일제히 붙잡힐 정도였다. 따라서 그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고향인 맹산군 지덕면은 맹산군 북단에 위치하여 만주로의 이주가 어렵지 않은 곳이었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1927년 북만주 일대인 옌지현(延吉縣) 상의향(尙義鄕) 노두구(老頭溝)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와 함께 1920년대 중반 만주에서 대표적 항일 무장단체로 활동한 정의부(正義府)의 모연대원(募捐隊員)으로 활동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성립한 단체로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 등 8개 단체를 통합해 독립 전쟁을 수행하고자 결성되어 자치정부의 성격을 띠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의부는 서간도의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를 중심으로 성립된 단체였기 때문에 당시 어무현(額穆縣)을 경계로 한 이남의 남만주를 중심 관할 지역으로 정하였다. 그 때문에 거리가 먼 북쪽의 북간도 지역 한인 사회에는 지방조직을 설치하고 모험대(冒險隊)·암살대(暗殺隊)와 같은 전투부대를 파견하거나 한편으로는 모연대를 파견해 군자금과 세금을 징수하였다. 특히 정의부 모연대는 허룽현(和龍縣)에 제1모연대, 옌지현에 제2모연대, 왕칭현(汪清縣)에 제3모연대를 설치하였다. 이때 옌지현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제2모연대 소속이었을 것이다. 특히, 옌지현의 상의향 노두구에서 현지인으로 거주하면서 군자금과 세금 징수를 위해 파견된 모연대원을 도왔다. 1927년 4월 초에 옌지현 일대를 순회하면서 군자금을 모금한 모연대원 김상배(金相培)·박남수(朴南秀)·김승무(金承懋)·김시흥(金時興) 등이 23일에 자신이 사는 상의향 노두구로 오자 이들을 도와 함께 군자금과 세금 징수를 위해 파견된 정보원 역할을 벌였기 때문이다. 실제 김상배 등은 4월 17일 룽징龍井村 제4구(區) 이희준(李熙駿)이 경영하는 전당포를 방문해 ‘정의부 모연대원’을 증명하는 사령서를 보인 후 세금을 징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이틀 후 19일 오후 2시에는 상의향 대모록구(大母鹿溝)의 부호 한주관(韓周官)의 집을 방문하여 의무금 30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때는 참여하지 않았고, 23일 거주지로 모연대원들이 찾아오자 밤 12시경 상의향 대파기구(大箥箕溝) 중남촌(中南村)의 촌장인 김승준(金承俊)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계를 섰다고 진술한 점을 통해서도 현지 정보원 성격의 역할을 하였다. 모연대원은 정의부 소속의 신분을 드러내는 사령장을 보이고 ‘의무금’을 징수하였다. 하지만, 신변 보호를 위해 권총을 소지하고 다녔기 때문에 일제는 이들이 러시아식 5연발 권총을 들고 김승준을 협박해 군자금을 모금하려 하였다고 하면서 이른바 강도미수죄를 적용하였다. 하지만 김승준이 현금이 없다고 하며 후일을 기약하자 모연대원들은 그대로 돌아갔다. 이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김상배 등을 도와 의무금을 징수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발각되어 체포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7년 12월 16일 청진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결과 이른바 강도미수죄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28년 1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을 확정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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