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순
桂容淳미상 ~ 1922. 9. 2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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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9) 본관은 수안(遂安)이다. 수안 계씨는 대부분 평안도 지역에 거주한 사실로 미루어 평안도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1922년 9월 2일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현 랴오닝성(遼寧省)) 관뎬현(寬甸縣)에서 항일 활동을 벌이다가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에서 파견된 일제 경찰과 교전 중 전사 순국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관뎬현 일대는 압록강 대안(對岸)과 가까운 국경 지역으로 벽동군과 가까워 치열한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강화된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인해 국내의 의병 활동과 항일운동이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이동하였다. 다수의 한국인이 거주하게 되자, 만주 지역 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서 대한독립단이 결성되었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3월 15일 만주 지린성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조직된 후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하여 지단 조직을 확대 설치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관뎬현과 환런현(桓仁縣)·싱징현(興京縣)·지안현(輯安縣) 등에 지단을 두고 국내의 함경도·황해도·평안도 지역에도 지단을 설치해 국내 진입 작전을 펼쳤다. 그 때문에 일제는 대한독립단원의 월경(越境)을 막으려고 국경의 독립군 세력을 소위 ‘월경비적(越境匪賊)’이라 깎아내렸으며, 토벌을 빙자하며 중국의 국경을 넘는 불법을 자행하였고 이로 인해 잦은 교전이 벌어졌다. 일제는 1920년 10월 만주의 독립군 토벌을 명분으로 교민들을 학살하는 참변을 일으켰다. 이후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많은 의병부대가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고 무장 부대가 통합하는 과정에서 자유시참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무장 항일 세력은 소수 병력으로 국경인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를 오가면서 군자금 모금과 밀정 처단, 주재소 습격 등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군과 경찰은 병력을 동원해 월경하는 독립군을 추격하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의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무장한 채 넘어오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그럼에도 일제는 1922년 9월에도 독립군을 추격한다는 명목으로 국경을 넘어와 관뎬현 일대에서 교전을 벌인 것이다. 1922년 9월 1일 평안북도 벽동군에 주재하던 일제 경찰 12명과 관뎬현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이튿날인 2일에는 하루에 두 번의 교전을 벌인 끝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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