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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준

丁銅俊

1897. 8. 21 ~ 194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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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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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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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간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밀양시장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897년 8월 21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읍(密陽邑) 내이리(內二里, 현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미야마 다카마사(三山高正)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일제히 일어났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종교계와 학생들은 만세시위의 전국 확산을 추진하였다. 1919년 3월 초순, 윤치형(尹致衡)·윤세주(尹世胄) 등은 고종황제의 인산(因山)에 참례하기 위해서 서울로 상경해 있던 중 3월 1일부터 전개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밀양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들은 밀양사립동화중학교(密陽私立同和中學校) 교장 전홍표(全鴻杓)에게 만세시위 전개에 관한 자문을 구하였다. 그 후 윤치형·윤세주·정동찬(丁銅燦)·김병환(金餠煥)·윤보은(尹輔殷)·김소지(金小池)·지종관(池鐘寬)·박상오(朴尙五)·정동찬(丁銅燦)·김상이(金尙伊) 등과 함께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밀양면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가지고 위북산(偉北山)으로 올라가서 밤새도록 독립선언서 수백 장을 등사하였으며,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수백 매를 만들어서 이를 윤세주의 집에 비밀리에 보관하였다. 3월 13일 시위 주도자의 일원으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가지고 와서 밀양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오후 1시 30분 경 시위 주도자 중 한사람인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장터에 모인 군중은 시위 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른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에 나온 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일부는 밀양공립보통학교로 가서 각 교실마다 종이 태극기를 비치해 두기도 하였다. 이에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 150여 명이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시위대가 늘어나면서 일제 군경은 강경하게 이를 진압하였다. 시위대의 해산 이후, 일제 군경은 시위를 주도했거나 참여한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및 검거과정에 돌입하였다. 그 과정에서 밀양 장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19년 8월 14일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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