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식
鄭東植1874. 1. 19 ~ 1926. 7.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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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74년 1월 19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의 가산리 연극공연장 및 2일의 홍성시장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금마면에서는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4월 1일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1일 이후 독립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먼저 이재만과 협의한 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열리는 연극공연을 계기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와 같은 만세운동 계획을 전혀 알지 못하고 4월 1일 동리 주민들과 함께 연극관람을 위해 임시 연극공연장으로 갔다. 연극이 진행 중이었던 오후 8시 경 갑자기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이 객석에서 일제히 일어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조선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공연장에서 갑자기 들린 ‘조선 독립 만세’의 외침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직후 민영갑 등의 만세시위에 동참하라는 호소에 크게 공감하였다. 이에 공연장에 있던 20~30여 명의 주민들과 호응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곧바로 해산되었으나, 시위는 다음날로 이어졌다. 4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 전날의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홍성시장에 나가 재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은 홍성시장의 장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 민영갑 등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자, 주변의 동리에서 나온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동참하면서 전날의 만세시위보다 규모가 확대되었다. 금마면에서 전개된 2일 간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혀서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4월 23일의 즉결심판에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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