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기
桂永基미상 ~ 1923. 10. 13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출생연월일과 출생지는 자료의 한계로 확인할 수 없다. 1922년 1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의 만주 지역 무장 독립운동 단체들은 경신참변(庚申慘變)과 자유시참변 등으로 인해 약화된 항일운동의 전열을 재정비하고자 통합을 도모하였다. 그 결과 1922년 8월 23일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한 대한통의부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대한통의부는 관뎬현(寬甸縣)을 중심으로 하여 퉁화현(通化縣)·환런현·싱징현(興京縣)·지안현(輯安縣)·린장현(臨江縣)·창바이현(長白縣)·류허현(柳河縣) 등 총 8현을 관할하였고, 지방행정기관인 민사부를 설치하였다. 한편, 중앙에는 재무부·학무부·법무부·교통부·군사부를 두었고 군사부 산하에 의용군(義勇軍)을 설치하여 각 단체의 군사력을 통합하였다. 의용군 사령장(司令將)은 한때 군사부장을 겸할 정도로 막중한 권한을 지녔고, 의용군은 1개 대대에 5개 중대와 2개 독립중대(헌병대·유격대), 약 800명으로 구성되어 활발한 무장투쟁을 이어나가는 동력이 되었다. 이때 2중대 2소대에 소속되어 주로 퉁화현을 활동 지역으로 하면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소속된 의용군 2중대는 중대장 최석순(崔碩淳)이 통솔하는 부대로 대한독립단 계열의 부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2중대는 130여 명의 중대원으로 구성되었고 총기는 136정을 보유하고 있어 전 중대원이 화기를 보유한 전투부대였을 것으로 보인다. 최석순이 이끄는 2중대의 주요 임무는 국내 진공 작전이었다. 그 때문에 압록강을 건너 대안(對岸) 지역인 평북 의주(義州)·위원(渭原)·초산(楚山)·벽동(碧潼)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을 전개하였다. 한편, 국내 진입 과정에서 일본군의 추격을 받다가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였고, 만주로 넘어온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1920년대 이후 만주 일대는 독립군 추격을 빙자한 일본 군경의 월경(越境)이 빈번하였고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관헌들의 추격까지 더해지면서 그 활동이 위협을 받았다. 이 무렵 일본군과 중국 관헌의 추격에 시달리던 의용군 2중대 2소대 역시 위기에 처해 있었다. 1923년 10월 13일 2소대는 추격을 피하기 위해 소대장 대리 현용환(玄用煥)의 지휘 하에 부대원 32명이 남만주 퉁화현 일대의 고려성자로 이동한 후 한인의 집에 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첩보를 받은 중국 관헌인 순사 손전청(孫殿淸)이 중국 순경 40명을 이끌고 오전 10시경 부대원과 함께 은신한 집을 포위 습격하였다. 이에 부대원 일부와 함께 중국 순사들의 공격에 대항해 장총 6정, 모젤 권총 2정으로 1시간 동안 치열하게 교전하였다. 그러나 결국 김성복(金成福)·김성옥(金成玉)·정덕곡(鄭德谷)·이근택(李根澤)·김상준(金相俊)·김용희(金龍熙) 등과 함께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그리고 동지인 방찬문(方贊汶)·이송기(李宋基) 등은 포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들 8명의 희생으로 인해 나머지 부대원은 대한통의부의 근거지인 관뎬현 방향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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