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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시

鄭南時

1885. 9. 19 ~ 193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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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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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河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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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하동 옥종면(3.24
  • · 3.29)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9월 19일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靑岩面) 궁항리(弓項里, 현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9일 하동군 옥종면(玉宗面)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평양·안주·의주·선천·원산·진남포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한 종교계와 학생들은 만세시위를 전국적 확산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남 하동군 일대에서도 만세시위가 기획되었고 3월 24일 옥종면(玉宗面) 안계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28일 권대섭(權大燮)을 만나 3월 24일의 안계리 장터 만세시위 소식 및 다른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다음 날인 29일 안계리에서 새로운 만세시위를 일으킬 뜻을 밝혔다. 이에 권대섭이 동의하자, 인근 주민들에게 안계리 장터에서 있을 만세시위의 참여를 권유하도록 요청하였다. 3월 29일 옥종면 월횡리(月橫里)로 만세시위에 참여할 군중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청암면 궁항리 주민 150여 명을 이끌고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약 3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태극기를 앞세우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를 인솔해서 위태리(葦台里), 가종면(加宗面) 월횡리(月橫里)를 지나서 안계리 장터를 향해서 행진하였다. 하지만 이내 긴급 출동한 일제 군경은 총검을 이용해서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권대섭과 함께 붙잡혔다. 시위가 끝난 후 일제 군경은 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에 대한 색출 및 연행을 실시하였다. 3월 29일 시위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일제 군경에 의해서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하였다.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결국 그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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