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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주

丁基周

1873. 1. 1 ~ 1930.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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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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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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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73년 1월 1일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흑교면(黑橋面) 정자리(亭子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46세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황주면(黃州面) 천도교구는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천도교인 최창룡(崔昌龍)으로부터 만세운동 발발 소식과 더불어 독립선언서 10부를 전달받았다. 그 날 소(小)교구장 김성준(金聲駿)과 교훈(敎訓) 황기타(黃己拕)를 중심으로 천도교인들이 모여 남천 장터가 열리는 3월 2일 일요일에 만세운동을 열기로 결의하였다. 김성준과 황기타는 평소 조선 독립을 열망하였던 황주면 내 인사들인 황강리(黃崗里)의 최석길(崔錫吉)과 김광섭(金光燮), 성남리(城南里)의 김병식(金炳植), 벽성리(碧城里)의 조진영 등과 접촉하였다. 그들로부터 3월 2일 남천 장터에서 열릴 예정인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약속받았다. 천도교구실은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연락을 취해서 남천 장터의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2일 오후 2시 경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남천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천도교인들의 시위를 주도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이는 황기타였다. 조진영은 남천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조선독립선언의 취지를 연설하면서 시위대 합류를 권유하였다. 평소 일제의 한국병합 이후로 조선 독립을 숙원하던 중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조선독립을 선언하는 등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공감하고 남천 장터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의 행진은 황주경찰서에 이르러서 일제 경찰에 의해서 제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의해서 시위대 일원인 김병식과 강형섭(康亨燮)이 체포되자, 시위대는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격렬히 저항하였다. 표정일·이준근·최석길이 중심이 된 시위대 40여 명은 황주경찰서에 들어가 경찰의 진압을 제지하고 경찰서 집기를 부수었다. 황주경찰서를 나온 시위대는 예수교 예배당으로 이동해서 대오를 정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예배당에 있었던 교인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시위대 200여 명은 천도교구실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하였다. 황주경찰서 일제 경관은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인근 지역에 지원 병력을 요청하는 한편 시위를 차단하고 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의 색출을 실시하였다. 소방조(消防組)까지 투입해서 지역 일대의 검문 검색을 강화하였다. 오후 5시에는 일제 경찰과 헌병들이 천도교구실로 진입해서, 그곳에 머물고 있었던 시위 주도자 황기타·최석길·김광섭·표정일을 비롯해서 시위 참여자 8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수색 과정에서 남천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이 지방법원의 원심을 확정하자,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 형사부는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징역 1년 6월을 확정함에 따라 일제의 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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