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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수

丁奎壽

1901. 6. 2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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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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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901년 6월 22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내리(城內里)에서 태어났다. 19세 때이던 1919년 3월 20일 전남 무안군 외읍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외읍면의 청년 유지(有志)인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는 1919년 3월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는,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1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3월 19일 김순기의 집에 모여 3월 20일 외읍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는 한편, 급하게 태극기를 제작하고, 친일 부역자들의 반성과 일반 민중의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경고문(警告文) 수십 장을 작성하였다. 3월 20일 새벽부터 대한 독립 만세의 글귀와 태극기가 선명히 드러나는 경고문을 외읍면 각지에 배부·게시하였다. 이후 오전 11시 무렵 외읍면 남산(南山)에 주도자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독립만세’의 함성 소리를 듣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며 동리를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1시경에는 무안보통학교(務安普通學校) 앞에서 경찰관주재소에서 출동 나온 일제 경찰들과 대치하였고, 오후 2시 경에는 외읍면 장터 등 무안 시내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쳐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그 결과 시위대는 오후 2시가 넘어서면서 500명이 넘는 다수가 되었다. 이에 일본 측에서는 목포(木浦)에서 일제 경찰 병력을 증원, 파견하는 한편 무안군수(務安郡守)도 병력을 이끌고 나와 시위대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시위대의 위세에 눌려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고 다만 시위를 지켜볼 따름이었다. 이에 독립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계속해서 시위를 벌이다 오후 10시 30분 경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이 주도자를 검속하는 과정에서 붙잡혀 심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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