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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필

鄭君弼

1883. 12. 25 ~ 197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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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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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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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1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3년 12월 25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현 화성시)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 거주하며 포목상(布木商)을 운영하고 있었다. 국문을 해독할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 정원용(鄭元鎔)이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송산면에서는 홍면옥(洪冕玉)·홍효선(洪孝善) 등이 주축이 되어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첫 번째 만세시위는 3월 26일 일어났다. 세금 납부일을 맞아 구장인 홍명선(洪明善)의 집에 호세(戶稅)를 납부하기 위해 모인 12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들은 오후 5시경 송산면사무소(松山面事務所) 부근으로 이동하여 태극기를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약 150명 정도였다. 3월 28일에는 사강리 주민과 마을에 위치한 사강리시장(沙江里市場·沙江市場)의 장날에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경찰은 사강리와 인근 마을 주민들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벌이는 것을 우려하여 점포를 닫으라고 명령하는 등 시위를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사강시장에서는 오전 10시경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11시 무렵에는 홍면옥의 집에서 홍면옥·홍효선·김창준(金昌俊)·왕광연·홍태준·홍문선(洪文善) 등이 ‘만세’를 외쳤다. 이 날의 만세운동에 다른 상인들 및 주민들과 참여하여 오후 2~3시경 사강리 및 인근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사강리에 있는 송산면사무소 뒷산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은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만세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자,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출동하였다. 노구치 부장은 만세시위를 제지하려고 하였지만, 시위대는 굴하지 않고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노구치는 주도자인 홍면옥·이규선(李奎善)·예종구(芮鍾九) 등을 우선 체포하였다. 그러나 홍면옥이 제지에 불응하고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치며 저항하였다. 그러자 노구치 순사가 홍면옥을 향해 총을 발포하였다. 홍면옥이 총상을 입은 모습에 격분한 주민들은 동요하였고, 이를 본 노구치 부장은 자전거를 타고 남양(南陽) 방면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주민들과 함께 도주하는 노구지 순사에게 돌을 던지면서 추격하였고, 돌과 곤봉 등으로 격살하였다. 이 일로 1919년 5월 9일경 붙잡혀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 위반, 살인 혐의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920년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이 그대로 인정하여 징역 7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고등법원에서 1920년 7월 5일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4년 1월 26일 이른바 「칙령(勅令)」 제10호에 의거, 형이 징역 5년 4월 20일로 변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한역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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