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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啓老1883. 5. 3 ~ 1950.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악군 은홍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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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3년 5월 3일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은홍면(銀紅面) 학산리(鶴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일 안악군 은홍면 온정리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치간(朴治幹)·유용원(柳龍源)과 함께 3월 1일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홍면 온정리(溫井里)의 장날인 3월 11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매일 밤 유용원의 집에 모여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시위에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아울러 은홍면을 비롯해서 대행면(大杏面)과 서하면(西河面)에 위치한 개신교 교회에 연락을 취해서 만세운동을 함께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11일 오전 11시 무렵 온정리 교회 영수 이정엽(李正燁)의 집 정원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수백 명의 사람이 모인 가운데 박치간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은 모두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의거해서 질서 정연하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서약하였다. 서약을 마친 후 ‘대한독립’이라고 쓰여 있는 큰 기를 앞세운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을 하였다. 시위대가 장터로 행진하자, 장터에 있던 사람들이 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 일대를 행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시위대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를 이끌고 시가지 일대를 행진한 후, 헌병주재소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일본인 헌병 1명과 조선인 헌병보조원 2명이 시위대로 가서 ‘대한독립’이 쓰인 큰 깃발을 빼앗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와 헌병들 사이에서 다툼이 발생했으며, 시위대 선두에 있었던 박승도(朴承道)가 헌병들의 총검을 빼앗아 시위대를 저지하려던 조선인 헌병보조원을 꾸짖으면서 총대로 조선인 헌병보조원을 구타하였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일제 헌병대가 시위대를 향해서 일제 사격을 가하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대의 발포로 인해서 박승도·전인식(全仁植)·김학규(金學圭)가 현장에서 즉사하였으며, 시위대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때 일제 헌병대가 발포한 총탄으로 왼쪽 갈비에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건물파괴죄, 구타죄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파리평화회의에서 주창된 민족자결에 따라서 조선민족도 자유 독립을 획득하는 것은 정정당당하고 따라서 보안법 위반이 아닐 뿐더러, 시위 과정에서 파괴와 구타를 행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하는 상고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1919년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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